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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시대착오적이라 치부되어도 이 말은 아직 살아있다. 나이 든 사람은 “홍도야 우지 마라~”를 흥얼거리거나 <미워도 다시 한번>의 기억을 품고 있겠지만, 젊은 사람도 ‘신파’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이나 <신과 함께-죄와 벌> 혹은 최근 <반도>에 이르기까지, 과하게 흘러넘치는 감정 표현을 마주하면 신파 딱지를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요즘은 유독 ‘오글거리는’ 표현을 꺼리는 데다가 그런 장면을 일상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대중예술이 종종 구사하는 이 과잉이 이상해 보이고 순수해 보일 리 없다. 미학적 완결성을 해치면서까지 마련한 그 부자연함이란 상업적 성공을 위한 마케팅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파는 거슬리거나 지워내야 할 무언가를 대표하는 말로서 여전히 유효한 중이다.
백 년이 넘는 신파의 역사에서 그 예외적인 시절이 있다면 그때는 신파극이 ‘뉴 웨이브(新派)’를 이루던 1910년대뿐일 것이다. 원래 신파는 ‘구파’ 가부키의 대타적인 위치에서 시작한 소인극이 일련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전성기를 맞이한 1900년대 중후반의 일본 신파극에서 유래된 것이다. 1906년 일본의 통감부 정치가 시작되면서 일본 거류민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들을 위한 흥행장이 명동·충무로 일대에 들어서면서 신파극이 공연되었다. 그곳을 드나들던 조선인들이 속속들이 단체를 조직해 같은 이름으로 공연한 것이 한국 신파의 기원이다.
임성구(林聖九, 1887~1921)는 그 선구적 존재다. 서당에 다니면서 글을 깨우쳤을 뿐 어떤 근대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그의 백형 임인구와 함께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뒷문 근처에서 과일가게를 하던 이 평범한 청년이, 일본인 극장에 드나들다가 마침내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을 조직하여 신파 시대를 연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일본의 통치가 본격화하면서 문화적 재편이 시작된 상황이었고, 신파극은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경영의 차원에서 은밀히 장려한 공연예술이었다. ‘혁신단’의 출현으로 개화한 신파극은 식민지적 근대로의 전환기에 놓인 대중의 다양한 심미적 요구와 재빠르게 결합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이 일본 유학생 출신의 윤백남(尹白南)·조일재(趙一齋) 등의 ‘정통’ 신파극보다 ‘무식한’ 임성구의 연극을 더 환호한 사실이다. 모방으로 시작했으나 모방에서 점점 멀어져 간, 내용이든 형식이든 과감하게 가공한 임성구 식의 연극을 관객은 선호했다. ‘무식’했으나 비굴하기는커녕 자존심이 강했던 임성구, 어쩌면 그의 동력은 애국계몽기의 끝자락에서 품은 나름의 소명 의식일지도 모른다. ‘혁신단’ 창립 이념인 ‘권선징악(勸善懲惡)·풍속개량(風俗改良)·민지개발(民智開發)·진충갈력(盡忠竭力)’ 혹은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한 레퍼토리가 심상하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교육기관이나 걸인을 위한 자선 공연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안타깝게도 일정한 대본 없이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구찌다데[口立て]’ 방식이었던 탓에 당시의 신파극은 <매일신보>의 기사나 회고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에 매혹되었을 관객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파극은 처음 보는 종류의 공연이었고, 이 새로움은 형식의 이국성과 내용의 동시대성에서 나왔다.
공연 시작 전에 주연급 배우가 나와 개막 인사를 하면서 그날의 공연 개요를 설명하고, 막이 바뀔 때마다 앞의 내용을 요약해 주며, 마지막 막을 남겨두고는 단장이 나와 인사말과 연극론 그리고 당일 연극의 결론과 이튿날 공연을 홍보했다. 종래의 연행예술과는 판이한 ‘신파극’과 그 레퍼토리를 생소하게 여겼을 관객의 이해를 돕고 선전 효과를 높였다. 일본 신파극이 받아들인 가부키 흔적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일본인 극장에는 무대 오른쪽 끝에서 1층 객석으로 돌출한 경사 무대 ‘하나미치[花道]’가 있었는데, 이곳을 주연배우를 돋보이는 등·퇴장로로 삼았다. 인물의 등장을 알리는 북이 울리면 관객은 일제히 이곳을 쳐다보고, 잠시 후 북 장단에 맞춰 걸어 들어오는 배우를 발견하는 식이다. 남자가 여역(女役)을 맡는 ‘온나가다[女形]’ 배우의 존재도 이 시대의 이채로움이다. 고수철(高秀喆)이 유명했다. 그때까지는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도 없었던 터라 온나가다 배우의 연기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였다.
레퍼토리도 새로웠다. 고전의 세계를 극화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동시대의 인간을 다루면서 당대의 정치적·윤리적 쟁점을 함축했다. 동요하는 근대의 혼란스러움, 흔들리는 주체의 위치, 불확실한 이념과 전망, 그리고 억압적인 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신파극이 상상한 것은, 명료한 도덕의 세계였다. 그 초기에 군인·경찰·은행가·교사·학생 등 신종신분을 지닌 남성 주인공의 입지전적 성공이라는 ‘신’영웅담을 그려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억압과 욕망을 표현한 수난 서사가 신파극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이수일과 심순애 그리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려진 <장한몽(長恨夢)>도 바로 이때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신파극이 미학적 규범을 지닌 공연양식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신파극은 극단에 따라 혹은 제작의 조건과 상업적 필요에 따라 여러 형식적 요소의 넘나듦이 탄력적인 새로운 볼거리였으며, 특이한 공연방식 상당 부분은 1920년대에 가면서 거의 사라졌다. 어떤 측면에서는 레퍼토리조차 볼거리였다. 신파극이 ‘눈물’을 ‘연기’할 수는 있어도, 후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으레 상상하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장안의 온갖 한량과 부랑배가 모여들고 경찰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성적(性的) 거래도 이뤄지던 곳, 정숙하고 엄숙하기보다 이 새로운 공연을 시끌벅적하게 즐기던 곳이 당시 극장의 풍경이었으니, 과장은 있었을지언정 공감의 눈물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랬던 신파가 어떻게 해서 여태 살아있는 것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파는 190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고 ‘연극’인데, 그로부터 1세기가 넘는 동안 ‘말’은 그대로이되 일본 신파를 넘고 연극을 넘어 보편적으로 호소력 있는 감정 문화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신파극이 미숙하거나 타락한 통속물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면서부터 이를 제거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헛수로 만든 그 질긴 생명력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분기점은 3.1운동 이후 탈식민화의 기대와 그 좌절을 연쇄적으로 경험한 1920년대이다. 신파는 이제 고상한 근대적 예술의 윤리적 목표에 불필요하다고 판단된 세속적인 것들을 저장하는, 말하자면 진보의 잉여였다. 이는 대중예술이 감당해온 몫이기도 하다. 1910년대 레퍼토리의 일정한 속성이 활성화되어 신파의 계보를 이뤄 간 것도 이런 맥락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의 기원을 묻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모방에서 출발한 신파와 지금의 신파는 얼마나 다른지! 다만, 어떤 연속성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신파가 약자의 메시지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분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억눌린 존재가 과장하지 않으면 결코 들려줄 수 없는, 세상을 향한 감정의 웅변! 신파의 호소력이 여성 수난 서사에서 빛을 발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신분이 미천하고 무학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공공연히 자신을 멸시한 엘리트들에 대해 당당했던 임성구, 이미 신파의 운명은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트로트 열풍이 한창이다. 한동안 시대착오적인 변두리 서민예술로 격하되었으나 이제 대세가 되어버린 노래의 메시지가 신파일지 가끔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0조 및 「금융투자업이해상충방지규정」
제15조 등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교보생명의 정보교류 차단과 관련된 주요 내용을 공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분 | 기초수급자 지원 | 영세자영업자 등 지원 | 개인워크아웃 (개인신용회복) |
개인회생제도 |
---|---|---|---|---|
신청기관 | 자산관리공시 | 신용회복위원회 | 신용회복위원회 | 법원 |
시행시기 | 2005년 5월 9일부터 6개월간 한시적 |
2005년 5월부터 시행 | 2002년 10월 1일부터 | 2004년 9월 23일부터 |
대상채권 |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
협약에 가입한 2개 이상 금융기관 채권 |
제한 없음(사채 포함) |
채무범위 | 제한 없음 | 제한 없음 | 5억원 이하 | 무담보채무(5억) 담보채무(10억) |
대상채무자 | 기초수급자이면서 신용불량자 (2005.03.23 기준) |
|
신용불량자이며 최저생계비 이상 소득자 |
파산지경에 이른 봉급생활자 또는 영업소득자 |
채무조정수준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8년 이내 변제기간에 채무자가 정한 변제계획에 의한 변제 |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함
다음 사유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신용회복지원신청을 할 수 없음
지부명 | 전화번호 |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
---|---|---|
서울 명동본관 | 02-6337-2000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가 10-1 명동센트럴빌딩 6층 (한국 외환은행본점 뒤편) |
서울 영등포지부 | 02-6337-2000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18 영등포프라자 10층 (영등포 마사회빌딩 10층) |
부산지부 | 051-638-8890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825-3 (눌원빌딩 6층) |
대구지부 | 053-428-9360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가 6-1번지 (대우빌딩 4층(대구역 앞)) |
광주지부 | 062-233-1872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27 (금호종합금융(주) 6층) |
대전지부 | 042-538-0320 |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188-15 (사학연금회관 5층) |
인천지부 | 032-864-9460 |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205-11 (주안역에서 (구)시민회관 방향 400미터 전방) |
경기도지부 | 031-234-6108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1246 (경기지방공사 내 1층) |
의정부상담소 | 031-844-9848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195-6 (의정부역앞 동부광장 건너편 한국시티(한미)은행 4층) |
원주상담소 | 033-764-1439 | 강원도 원주시 원동 58-1,마노벨라 빌딩 3층 (원주우체국에서 원주KBS방향 100m 지점) |
천안상담소 | 041-522-1459 | 충남 천안시 신부동 472-2, 천안축협 신부동지점 2층 (천안 시민회관 건너편) |
청주상담소 | 043-224-9521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21-2 (하나로상호저축은행 남문로지점 2층) |
전주상담소 | 063-253-5941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20-1 (전주종합경기장 1층 직5문) |
울산상담소 | 052-260-9413 |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 873-6 (삼호빌딩 3층) |
마산상담소 | 055-292-5495 | 경상남도 마산시 석전2동 259-6 (석전4거리 경남은행본점 옆 무학빌딩 3층) |
순천상담소 | 061-742-9415 |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 206-2 (남교 5거리에서 순천여고 방향 30미터 지점) |
제주상담소 | 064-758-9413 | 제주시 이도1동 1736-1 (흥국생명빌딩 3층) |
강릉상담소 | 033-641-2765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95-3 (옥천오거리 인근 옥천빌딩 3층) |
광명상담소 | 02-2066-8539 | 경기도 광명시 철산 3동 384 (농협중앙회 광명시지부 지하1층) |
안동출장상담 | 054-851-6046 | 경북 안동시 명륜동 344 (안동시청 민원실) |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서 다음의 요건을 충족하는 영세자영업자
2004년 12월 31일 기준 만 29세 이하의 미취업자로서 다음의 기준에 해당하는 채무자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2004년 12월 31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신용회복위원회 :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2005년 3월 23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지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전국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정보가 등록된 자로써,
지부명 | 전화번호 |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
---|---|---|
역삼본관 | 02-1588-3570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14 |
부산지사 | 051-860-8000 | 부산광역시 연구 거제3동 581-1 |
광주지사 | 062-231-3000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83 |
대전지사 | 042-601-5163 | 대전광역시 둔산동 1264 |
대구지사 | 053-760-5000 |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179 |
인천지사 | 032-509-1500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202-1 |
전주지사 | 063-230-1700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280-11 |
창원지사 | 055-269-8071 | 경상남도 창원시 중앙동 94-3 |
강릉지사 | 033-640-3434 |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139 |
청주지사 | 043-279-2400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35-14 |
각종 신용회복지원제도를 통해서 신용회복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의 개인채무자회생 제도 또는 파산제도를 이용하세요.
개인채무자회생제도는 2004년 9월 중에 실시할 예정이며, 파산제도는 이미 시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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