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Crtl버튼과 마우스휠 "상하"로 움직이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

북한산에 숨어있는 폭군 연산군의 최후

북한산에 숨어있는 폭군 연산군의 최후
북한산에 숨어있는 폭군 연산군의 최후
연산군묘 찾아 가는 길 , 1. 쌍문역 2번 출구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버스정류장에서 130번 버스를 탄다., 3.연산군 정의공주묘 정류장 하차한다., 4.길 건너 연산군묘 도착!
  • 여기가 그 유명한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의 묘야. 조선 제10대 국왕인 연산군(1476~1506)은 즉위 초기에는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꽤 정치를 잘 했는데,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폭정을 일삼는 등 악행을 저질러서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왕이야.

  • 비록 쫓겨난 왕이라도 무덤만큼은 이렇듯 제대로 만들어 줬나 보네요.

아빠:여기가 그 유명한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의 묘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폭정을 일삼는 등 악행을 저질러서 결국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왕이야., 딸:비록 쫓겨난 왕이라도 무덤만큼은 이렇듯 제대로 만들어 줬나 보네요.

연산군의 무덤이 처음부터 지금의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묘 자리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쫓겨난 뒤, 1506년에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가서 겨우 두 달 만에 그곳에서 병사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곳 강화도에 첫 무덤이 만들어졌다. 현재의 방학동 연산군묘 자리로 무덤이 옮겨온 것은 한 때 연산군의 왕비였던 폐비(거창군부인) 신씨가 강화도의 첫 연산군 묘를 한양으로 이장해 줄 것을 조정에 요청해서 1513년에 원래 이 곳에 있었던 의정궁주(義貞宮主) 조씨(趙氏) 무덤 위쪽에 묘를 쓰게 된 것이다.

중종 1권, 1년(1506 병인) 11월 8일(계미)

연산군이 사망하니 대신들과 상사 문제를 논의하다

(강화도) 교동 수직장 김양필, 군관 구세장이 와서 아뢰기를, “초6일에 연산군이 역질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죽을 때 다른 말은 없었고 다만 신씨(폐비)를 보고 싶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上)이 애도하고 중사(中使) 박종생을 보내, 수의를 내리고 그대로 머물러 장례를 감독하도록 하고, “연산군을 후한 예로 장사 지내라.” 전교하였다.

중종 17권, 7년(1512 임신) 12월 12일(임자)

신씨가 연산군을 양주 해촌으로 이장할 것을 상언하다

신씨(愼氏)가 상언(上言)하여, 연산군을 양주(楊州) 해촌(海村)으로 이장(移葬)하기를 청하니, (승)정원(政院)에 전교하기를, “소원대로 들어 주고, 왕자군(王子君)의 예로 개장(改葬)하도록 하라.” 하였다.

  • 의정궁주요? 궁주는 또 뭐죠? 공주를 잘못 쓴 것이 아닌가요?

  • 아니, 당시에는 후궁을 궁주로도 불렀거든.

궁주(宮主)는 고려시대 후궁이나 공주를 일컫던 칭호의 하나였다. 조선 초기에도 이런 관행이 잠시 남아 있다가 왕의 딸은 곧 공주나 옹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그때까지도 아직 왕의 후궁은 궁주로도 불렸다. 그런데 의정궁주 조씨는 태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자마자 곧 태종이 사망하는 바람에 `숙원`이니 `숙용`과 같은 내명부 첩지를 정식으로 받지 못하고 단지 궁주의 작호만 받았다. 따라서 승은도 입지 못했고 후사도 없었다. 원래 방학동 연산군묘 자리의 땅은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땅이었는데 후사가 없는 의정궁주의 제사를 임영대군이 맡으라는 어명이 있어서 1454년에 이 자리에 의정궁주의 묘를 쓰게 된 것이다. 의정궁주는 태종의 후궁이었으니 임영대군에게는 촌수로 따져서 할머니뻘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연산군 묘를 하필이면 왜 이 곳 임영대군의 땅으로 이장해 왔을까? 이는 한 때 연산군의 왕비였던 폐비(거창군부인) 신씨는 오빠가 신수근이고, 아버지는 신승선이었는데, 신승선은 임영대군의 딸과 결혼했다. 따라서 폐비 신씨는 임영대군의 외손녀가 되기 때문에 연산군 묘도 같이 이곳에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잠깐]누이가 중요한가? 딸이 중요한가?

중종반정 전날 밤, 전 중추부사 박원종이 신수근의 집에 당도했다. 그는 신수근에게 반정의 당위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려고 했다. 도대체 신수근이 누구길래, 반정군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일까?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왕비였고, 동시에 신수근의 딸은 당시 진성대군(훗날 중종)의 부인 이었다. 따라서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의 장인이 된다. 연산군의 폭정에 동조하여 권세를 누린 임사홍 등의 간신배들에 비해, 신수근은 중복된 왕실과의 혼인관계로 인해 부귀영화를 누릴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벼슬을 거부해서 조야에서 명망 있던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더구나 신수근은 연산군의 깊은 총애를 받고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가 협조할 시, 반정군이 궁궐에 무혈입성하는 건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원종은 신수근이 누구 편에 설지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반정사실을 대놓고 이야기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박원종이 교묘하게 한 마디를 물었다. '그대는 누이가 중요한가? 딸이 중요한가?' 신수근은 그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록 지금 임금이 포악하다고 하나, 세자가 총명하니, 걱정할 수 없다.' 신수근의 선택에 따라서 어떻게 보면 조선의 역사가 뒤바뀔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박원종은 기밀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나머지 그를 죽이게 되었다.

  • 그런데 의정궁주의 무덤은 둘레가 사각형인데, 다른 무덤들은 모두 원형이에요. 왜 그렇죠?

  • 응, 그건 왕조가 바뀌면서 장묘법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야.

딸:의정궁주의 무덤은 둘레가 사각형인데, 다른 무덤들은 모두 원형이에요.

우리나라의 전통장묘법은 시대에 따라서 약간씩 다른 점이 있다. 특히 불교가 성행하던 고려시대와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시대 장묘법의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바로 무덤의 외형이다. 왕릉을 제외하면 고려시대의 무덤은 사각형이 많은 반면에,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사각형 무덤이 점점 원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선 초기에는 아직 고려의 관습이 많이 남아 있어 사각형 무덤이 많은데, 의정궁주도 조선초기의 사람이라 무덤이 사각형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듯 왕조가 바뀌면서 장묘법에도 변화가 생겨났는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조선 초기에는 과도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초기 조선왕릉 중 일부에서는 이런 과도기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바로 조선왕릉의 정자각 주변에 있는 석물들 가운데 "소전대"와 "예감"이 그것이다. "예감(臺坎)"의 한자는 묻을 예臺, 구덩이 감坎 자를 쓰고, "소전대(燒錢臺)"는 불사를 소燒, 돈 전錢, 받침 대臺 자를 쓰는 데 사전을 찾아보면 둘 다 "왕릉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지방과 축문을 불사르는 시설"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소전대는 조선초기 왕릉인 건원릉(태조왕릉), 정릉(태조왕비 신덕왕후릉), 헌릉(태종왕릉)에만 있고 그 이후의 왕릉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왜 그럴까? 고려의 것을 이어받은 조선 건국초기의 왕릉 제례법에서는 고려의 관습대로 소전대에서 축문을 불사르고, 예감에는 그 재를 묻었다. 그런데 조선이 제대로 체계가 잡히자 불교를 국교로 했던 고려의 예법을 하나씩 걷어내고 그 대신 조선의 건국이념인 성리학적 유교예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알다시피 불교의 장례문화는 화장문화이고, 유교의 장례문화는 매장문화이다. 소전대는 말 그대로 태우는 곳이니깐 결국 화장문화의 상징으로 이해되었고, 불교문화를 없애는 차원에서 왕릉석물제도를 바꿔 버렸다. 그래서 소전대를 없앤 이후에는 예감에서 축문을 불사르고 재까지 묻어 버리게끔 예법도 수정을 했다.

[여기서 잠깐]소전대에서 무엇을 태웠을까?

소전대에 돈 전(錢)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는 조선초기에는 축문과 함께 다른 무엇인가도 함께 태운 것으로 추측된다. 소전대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돈을 태우는 돈대`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방이나 축문은 결코 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돈을 태운다는 뜻의 이름이 붙어 있을까?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원래 소전대에서는 돈, 특히 종이로 만든 지전(紙錢)을 태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의 장례문화 속에는 노잣돈(죽은 사람이 저승길에 편히 가라고 상여 등에 꽂아 주는 돈)이라는 민간풍습이 남아있고, 서양도 마찬가지인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 보면 죽은 사람들의 눈 위에 금화와 은화를 올려놓은 다음 화장을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 하나! 조선초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고대소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에서 소전대의 역할을 추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이튿날 양생은 주육(酒肉)을 갖추어 개녕동 옛자취를 찾으니, 과연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양생은 제전(祭奠)을 차려 슬피 울면서 지전(紙錢)을 불사르고 정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조문을 지어 읽었다.'

  • 연산군은 즉위하고 난 뒤 잠시 동안은 정치를 잘 하다가 갑자기 폭군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 글쎄, 갑자기 그랬다기 보다는 왕권과 신권의 다툼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봐야 하겠지.

연산군이 갑자기 폭군으로 바뀐 것은 생모였던 폐비 윤씨의 사건(투기심 때문에 성종의 얼굴에 손톱으로 상처를 낸 것으로 인해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은 일)을 알고나서부터 생긴 복수심 때문이라고 흔히들 많이 알고 있고, 또한 TV 사극에서도 그런 식으로 많이 묘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사료를 분석하면 연산군은 이미 갑자사화(폐비 윤씨의 사건과 연루되어 일어난 사화) 훨씬 이전부터 폐비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산군이 폭군이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왕의 권력인 왕권과 신하들의 권력인 신권의 부조화 때문이다. 조선은 전통적으로 신권이 강한 나라이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신하들의 벽에 부딪혀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영화 "광해"에서도 신하들이 임금 노릇을 하는 광대 "이병헌"의 뜻을 꺾기 위해서 차라리 자신들의 등을 밟고 가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고, 각종 TV사극을 봐도 신하들이 모두 모여서 "아니 되옵니다. 통촉해주소서"라고 하면 임금도 어쩌질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연산군은 집권 초기에 강력한 왕권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은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으로 이루어진 삼사(三司)라고 특유의 관청이 있었는데, 국왕과 국정에 대한 광범하고 강력한 간쟁과 감찰을 기본 임무로 갖고 있었다. 즉 목숨을 걸고라도 국왕이 잘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튼튼한 제도적인 장치 때문에 조선이라는 왕조가 500년 이상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삼사의 중요한 직책을 `사림파(士林派)`가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삼사를 장악하고 사사건건 국왕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해온 사림파가 눈에 가시였던 연산군은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삼아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사림파를 1차로 제거했다. 사화(士禍)는 말 그대로 사림(士林)들이 화를 입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국왕에 대한 견제세력의 중추역할을 담당했던 사림파가 힘을 잃자, 연산군은 강력해진 왕권을 국정개혁 등 건설적인 부분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방탕한 생활과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데 썼다. 예를 들면 전국에서 미녀들을 선발해서 궁중에서 흥청(흥청망청의 어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에 각종 연회를 열어서 놀아났고, 사냥에 빠져서 곳곳에 출입을 금하는 금표를 설치하고, 금표 안의 모든 민가를 철거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 그럼 연산군의 폭정은 모두 사실이었던 거에요?

  • 음. 아예 없는 일은 지어내지는 않았겠지만 일부 과장된 것도 있다고 봐야 할거야.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연산군이 폭정을 일삼은 것은 사실로 봐야 한다.하지만 일정부분은 반정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장한 측면도 있다. 우리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연산군에 대한 적절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최근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중종실록에는 연산군이 사냥과 유흥의 목적으로 민가를 철거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연산군일기 9년 11월 2일자 등의 기사에서는 연산군이 국법에 따라 궐담 100척 이내에 있는 민가만 철거하라고 명했고, 그것도 소정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또한 장차 다시 집을 세울 터까지 제공하라고 했다. 한편 연산군이 사헌부, 홍문관, 성균관 등을 기생들이 있는 집단으로 바꾸었다고 하는 기록도 있는데, 이 기생들은 원래부터 관청 내에 존재하던 가무악단이었다. 또한 큰어머니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를 겁탈했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지만 박씨는 당시로는 노인 대접을 받던 50대였고 연산군은 혈기왕성한 20대의 나이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 역시 반정세력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연산군의 진짜 모습은?, 연산군:여봐라! 내 사냥을 해야 하니 거슬리는 민가를 모두 철거하라! 크크크!, 국법에 따라 궐담 100척 이내의 민가를 철거하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라., 여봐라! 사헌부, 홍문관, 성균관을 기생으로 채워 넣도록 하라! 흐흐흐!, 음 저들은 원래 관청에서 일하는 가무악단 아닌가?

연산군과 관련하여 유명한 여인이 한 명 등장하는데 바로 장녹수이다. 장희빈, 정난정 등과 함께 역사를 좌지우지한 여자로서 TV 사극의 단골메뉴 중 하나로 등장하는 장녹수(張綠水, ? ~ 1506년)는 연산군의 후궁으로, 아버지는 충청도 문의현령을 지낸 장한필이고 어머니는 천민출신 첩이었다. 장녹수는 비록 아버지가 양반이었음에도 모계를 따라 천민의 신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장녹수가 대단한 미색을 갖춘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 장녹수는 그리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신 가무(歌舞)를 비롯한 다방면의 예술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겸비하고 있었고, 교태스럽고 요사스러워서 연산군을 어린애 다루듯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가 행한 나쁜 짓이 보고될 때 마다 연산군은 비록 순간적으로 격노하였으나 그녀를 보면 즉시 희색을 띄었다고 한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장녹수에 대한 기록이다.

연산 47권, 8년(1502 임술) 11월 25일(갑오)

김효손(金孝孫)을 사정(司正)으로 삼았다.

김효손은 장녹수의 형부이고,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상사(賞賜)가 거만(鉅萬)이었다. 부고(府庫)의 재물을 기울여 모두 그 집으로 보내었고, 금은 주옥(金銀珠玉)을 다 주어 그 마음을 기쁘게 해서, 노비, 전답, 가옥도 또한 이루 다 셀 수가 없었다.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렸으니, 김효손은 그 형부이므로 현달한 관직에 이를 수 있었다.

중종 1권, 1년(1506 병인) 9월 2일(무인)

장녹수 등을 참하고 폐주의 금인, 화압, 승명패를 철패하다.

대신 등이 모두 아뢰기를, “숙용(淑容) 장녹수(張綠水). 숙용(淑容) 전전비(田田非), 숙원(淑媛) 김귀비(金貴非) 등 세 사람은 모두 화근의 장본인이니, 마땅히 속히 제거하여야 합니다.” 하니, 그리하라고 전교하였다. 모두 참형에 처하고, 가산을 적몰하였다. (후략)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던가... 결국 그녀는 1506년 중종반정으로 그 영화의 빛이 바래고 만다. 장녹수의 최후는 비참하였다. 반정이 성공하고 연산군이 폐위된 후, 반정군들에게 붙잡혀 군기시(軍器寺: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 앞에서 참형(斬刑) 되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참수당한 그녀의 시체에 돌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 북한산 둘레길은 숨은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것 같아요. 다음 번 행선지는 어디죠?

  • 지금까지 내시묘역도 둘러보고 연산군묘도 둘러봤는데, 모두 조선시대인 옛날 이야기들이지. 이번에는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선열들의 묘역을 한번 돌아볼까?

  • 최동군(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외래교수)
  • 사진/그림
    박동현(만화가)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추천 콘텐츠

정보교류차단 주요내용공개

교보생명은 엄격한 정보교류 차단 규제체계를 구축·운용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0조 및 「금융투자업이해상충방지규정」
제15조 등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교보생명의 정보교류 차단과 관련된 주요 내용을 공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융투자업이해상충방지규정 개정안 전문

신용회복제도

금융채무 연체자를 위하여 시행되고 있는 신용회복지원제도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신용회복지원제도

주요 신용회복지원제도 비교
신용회복지원제도
구분 기초수급자 지원 영세자영업자 등 지원 개인워크아웃
(개인신용회복)
개인회생제도
신청기관 자산관리공시 신용회복위원회 신용회복위원회 법원
시행시기 2005년 5월 9일부터
6개월간 한시적
2005년 5월부터 시행 2002년 10월 1일부터 2004년 9월 23일부터
대상채권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협약에 가입한
2개 이상 금융기관 채권
제한 없음(사채 포함)
채무범위 제한 없음 제한 없음 5억원 이하 무담보채무(5억)
담보채무(10억)
대상채무자 기초수급자이면서
신용불량자
(2005.03.23 기준)
  • 영세 자영업자중
    신용불량자
    (2004.12.31 기준)
  • 청년층 신용불량자
    (상동)
  • 기초수급자 중
    신용불량미등록자
신용불량자이며
최저생계비 이상
소득자
파산지경에 이른
봉급생활자 또는
영업소득자
채무조정수준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8년 이내 변제기간에
채무자가 정한
변제계획에 의한 변제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워크아웃제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개인워크아웃제도
신용회원지원 신청 자격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함

  • 신용정보집중기관(전국은행연합회)에 연체 등의 신용거래정보가 등록된 자
  •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이 있는 자
  • 2개 이상의 협약가입 금융기관에 채무가 있고 총채무액이 5억원 이하인 자
신청이 불가능한 경우

다음 사유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신용회복지원신청을 할 수 없음

  • 신용회복지원제도에 의한 신용회복지원을 1년 이내에 3회 이상 신청한 자
  • 신용회복지원제도에 의한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하여 최근 1년 이내에 기각된 자
  • 조세 또는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채무이행을 회피하기 위하여 재산을 도피하거나 은닉, 기타 책임재산의 감소 행위를 초래한 경력이 있는 자
  • 어음, 수표 부도거래처인 개인사업자로서 동 사유를 해소하지 못한 자
  •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금융질서 문란자
  • 신용회복지원협약에 가입하지 아니한 금융기관의 채무합계액이 총채무액의 20%이상인 경우. 다만, 협약 외 채권자가 신용회복 위원회의 채무조정안 내용과 유사한 조건으로 채무를 조정해 주기로 동의하는 경우에는 동 채권을 협약 외 채권에서 제외
  • 신용불량정보 등록사유 발생일로부터 5개월 전 이내의 대출실적이 총채무액의 30%이상인 경우. 다만, 기존 대출의 상환에 전액 사용된 대출은 제외
  • 납부하지 않은 각종 조세금이 총채무액의 30%이상인 경우
  • 법원에서 채무주존재 확인소송 또는 대출의 무효, 취소를 다투거나 분쟁상태에 있는 자
  • 자금의 사용이 도박, 투기 등 사행성으로 그 용도가 부적절하거나 기타 사회 통념상 신용회복지원 대상자로 인정하기 곤란한 자
상담소 위치안내
상담소 위치안내
지부명 전화번호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서울 명동본관 02-6337-2000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가 10-1 명동센트럴빌딩 6층 (한국 외환은행본점 뒤편)
서울 영등포지부 02-6337-200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18 영등포프라자 10층 (영등포 마사회빌딩 10층)
부산지부 051-638-8890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825-3 (눌원빌딩 6층)
대구지부 053-428-9360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가 6-1번지 (대우빌딩 4층(대구역 앞))
광주지부 062-233-1872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27 (금호종합금융(주) 6층)
대전지부 042-538-0320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188-15 (사학연금회관 5층)
인천지부 032-864-9460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205-11 (주안역에서 (구)시민회관 방향 400미터 전방)
경기도지부 031-234-6108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1246 (경기지방공사 내 1층)
의정부상담소 031-844-9848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195-6 (의정부역앞 동부광장 건너편 한국시티(한미)은행 4층)
원주상담소 033-764-1439 강원도 원주시 원동 58-1,마노벨라 빌딩 3층 (원주우체국에서 원주KBS방향 100m 지점)
천안상담소 041-522-1459 충남 천안시 신부동 472-2, 천안축협 신부동지점 2층 (천안 시민회관 건너편)
청주상담소 043-224-9521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21-2 (하나로상호저축은행 남문로지점 2층)
전주상담소 063-253-5941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20-1 (전주종합경기장 1층 직5문)
울산상담소 052-260-9413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 873-6 (삼호빌딩 3층)
마산상담소 055-292-5495 경상남도 마산시 석전2동 259-6 (석전4거리 경남은행본점 옆 무학빌딩 3층)
순천상담소 061-742-9415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 206-2 (남교 5거리에서 순천여고 방향 30미터 지점)
제주상담소 064-758-9413 제주시 이도1동 1736-1 (흥국생명빌딩 3층)
강릉상담소 033-641-2765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95-3 (옥천오거리 인근 옥천빌딩 3층)
광명상담소 02-2066-8539 경기도 광명시 철산 3동 384 (농협중앙회 광명시지부 지하1층)
안동출장상담 054-851-6046 경북 안동시 명륜동 344 (안동시청 민원실)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생계형 신용회복지원제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생계형 신용회복지원제도
영세자영업자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서 다음의 요건을 충족하는 영세자영업자

  • 부가가치세법상 간이과세자 또는 면세업자 중 연 매출액이 4,800만원 미만인 자로서 생계비를 제외한 월평균 순소득이 채무원금을 분할상환하기 위한 변제액에 미달하는 자
  • 소득세법상 과세미달자 중 단순경비율 적용 대상자인 자 또는 월평균 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인 자
  • 사업자등록증 미개설, 휴업, 폐업 등으로 부가가치세법상 사업자가 아닌 실질 영세자영업자로서 신원이 확실한 제3자의 확인 또는 증명자료를 제출하여 실질적인 영업사실이 인정되는 자
  • 퇴폐, 향락 등 사회 통념상 불건전 업종을 영위하지 않는 자
지원내용
  • 6개월 단위로 최장 1년 동안 채무상환을 유예할 수 있으며, 유예기간 종료 후 최장 8년 동안 채무원금 분할 상환
  • 채무상환 유예기간은 매 6개월마다 본인의 연장신청에 따라 관련 내용을 심사하여 추가 연장 여부를 결정
  • 상환 유예기간 중에는 소정의 금리(연 5%)를 납부하고 채무원금 상환기간 중의 이자는 채무원금을 분할상환기간 내 전액 상환하는 경우 면제 가능
미취업 청년층

2004년 12월 31일 기준 만 29세 이하의 미취업자로서 다음의 기준에 해당하는 채무자

  •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자로서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학자금 대출 등을 연체중인 자
  •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자로서 신용불량자 등록 당시 미성년자(만 19세 이하)였고 신청일 현재 학생이거나 실업상태인 자
  •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자로서 신청일 현재 병역법에 의한 의무 군복무 중이거나 6개월 내 입대 예정인 자. 신청일 현재 전역자의 경우 상기 1항의 기준을 적용
  • 2004년 12월 31일 현재 부모의 금융채무 등에 보증을 하였으나, 부모가 상환능력이 없어 보증채무 이행부담을 지고 있는 자
지원내용
  • 최장 2년까지 채무상환을 유예할 수 있으며, 유예기간 종료 후 최장 8년 동안 분할상환
  • 상환 유예기간은 매 6개월마다 본인의 연장신청에 따라 관련 내용을 심사하여 추가 연장 여부를 결정
  • 군복무자의 경우에는 별도의 유예기간 연장신청 없이 전역 시점까지 유예하고, 전역 후에는 취업 시까지 6개월 단위로 최장 2년까지 채무상환을 유예
  • 상환 유예기간 중의 발생이자 및 채무원금 상환기간 중의 이자는 채무원금을 분할상환기간 내 전액 상환하는 경우 면제 가능
신청기간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2004년 12월 31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 신용불량정보에 등록된 채무자는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에 방문하여 채무조정을 신청
    - 신청시기는 약 1개월 후(2005년 4월 말경) 한국자산관리공사 홈페이지를 통하여 확인 가능
  • 신용불량정보에 등록되지 않은 채무자는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
    - 2005년 4월 1일부터 신청접수업무 개시
지원내용
  • 신용회복위원회: 조정된 채무 원금을 최장 10년 동안 장기분할 상환
  •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서 벗어날 때까지 채무상환을 유예한 후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채무원금을 10년 동안 장기분할 상환
신용관리교육
  •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및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채무조정을 받은 신청인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관리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
신청기간

신용회복위원회 :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자산관리공사를 통한 신용회복지원제도

자산관리공사를 통한 신용회복지원제도
지원 대상자

2005년 3월 23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지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전국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정보가 등록된 자로써,

  • 기준일: 2005년 3월 23일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요건 갖춘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라 함)
  • 은행, 여신전문회사(카드사, 할부금융사), 상호저축은행, 농협(단위조합 포함), 수협(단위조합 포함),보험회사(보증보험 포함), 새마을금고, 신협, 신탁회사, 증권회사, 증권금융회사, 중개회사, 자산관리공사, 유동화전문회사 등 기초수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대출채권 양도, 양수를 채권금융기관 협약에 가입된 채권금융기관에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자
  • 전국은행연합회의 「신용정보관리규약」(2005년 4월 28일 개정시행이전 규약기준)에서 규정하는신용불량정보가 등록된 자
신용회복지원 내용
원금 상환유예
  • 신청 채무자가 기초수급자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원금 상환 유예
  • 기초 수급자에서 벗어난 경우에는 소득 등 심사를 거쳐 최장 10년 내에서 무이자 분할 상환
이자의 면제
  • 양도일까지 발생한 이자, 연체이자와 양도일 이후 발생한 이자는 면제
  • 자격 상실에 따라 원금 채무를 장기 분할상환하는 경우에도 이자 미부과
상담소 위치안내
상담소 위치안내
지부명 전화번호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역삼본관 02-1588-3570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14
부산지사 051-860-8000 부산광역시 연구 거제3동 581-1
광주지사 062-231-3000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83
대전지사 042-601-5163 대전광역시 둔산동 1264
대구지사 053-760-5000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179
인천지사 032-509-1500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202-1
전주지사 063-230-1700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280-11
창원지사 055-269-8071 경상남도 창원시 중앙동 94-3
강릉지사 033-640-3434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139
청주지사 043-279-2400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35-14

법원의 개인채무자 회생제도 및 파산제도

법원의 개인채무자 회생제도 및 파산제도

각종 신용회복지원제도를 통해서 신용회복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의 개인채무자회생 제도 또는 파산제도를 이용하세요.
개인채무자회생제도는 2004년 9월 중에 실시할 예정이며, 파산제도는 이미 시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합니다.

개인채무자회생제도
빚이 15억원(담보채권 10억원, 무담보채권 5억원 이내)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대법원 규칙으로 정한 금액 이하의 빚이 있는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는 모든 빚(사채 포함)에 대해서 신용불량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습니다. 8년 이내의 상환기간으로 채무자가 정한 상환계획(요건: 채무자가 상환할 금액이 채무자 보유재산을 현재 처분해서 회수할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을 것)을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의 인가를 받아 확정되고 채무자가 상환계획대로 상환하게 되면 나머지 빚은 탕감됩니다.
파산제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법원에 파산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채무자에게 파산원인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파산선고를 받게 되며 채무자의 총재산을 모든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게 됩니다.
파산선고 뒤 채무자는 법원에 더 이상 채무를 갚지 않도록 허가해 달라는 면책신청을 할 수 있으며, 허가를 받아 결정이 되면 조세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책임을 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파산선고와 면책은 엄격한 기준에 의해 결정되므로 신청시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신청 여부를 정하여야 합니다.
파산선고 후 면책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워집니다.
개인파산 사실은 전국은행연합회 등 신용정보집중기관 등에 상당기간 보관됨에 따라 향후 신용카드 발급, 대출신청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채권추심업무 처리절차 안내

저희 교보생명보험(주)는 연체안내 및 채권추심업무를 '에이앤디신용정보(주)'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채권추심 행위는 채무자 앞으로 채권추심 수임사실 통지 이후,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채권추심 업무진행과 관련하여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에이앤디신용정보(주) CS팀 (전화번호 : 3705-4013, 4017) 및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주시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채무변제촉구문' 등의 우편물을 발송하여 채무상환을 요구하게 되고, 채무변제 불이행시 불이익(연체정보 등록에 따른 금융거래 제한 등)에 대한 안내를 하게 됩니다.
  • 우편물과 별도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채무상환을 요구하게 되며, 채무 불이행시 불이익에 대한 안내를 하게 됩니다.
  • 우편물이나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채무상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변제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귀하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에는 우편물이나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방문추심’에 관한 사전 안내를 한 후 채무상환 요구나 소재파악 또는 재산조사 등을 위해 자택이나 근무지, 기타 소재지에 대한 방문을 할 수 있습니다.
  • 상당기간 채무변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우편물이나 전화 또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채권자 또는 채권자협의회에 의한 채무금액 강제회수에 관한 법적조치(가압류신청, 지급명령신청, 강제경매신청 등) 예고통보를 할 수 있으며, 이에 불구하고 변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법원으로부터 집행권원을 부여받아 강제집행을 통한 채권 회수를 하게 됩니다. 그 밖에도 채권자 또는 채권자협의회에 의하여 법원에 재산관계명시 신청이나 채무불이행등록 신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희 교보생명보험(주)는 연체안내 및 채권추심업무를 '에이앤디신용정보(주)'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채권추심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사실이 발생할 경우 에이앤디신용정보(주) CS팀 (전화번호: 02-3705-4013, 4017)으로 연락주시면 적극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채권추심자의 신분이 의심스러울 경우
  • 채권추심자가 방문, 전화 등으로 처음 접촉해 올 때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사원증 또는 신용정보업종사원증)를 제시토록 요구하고, 이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사진 미부착·훼손 등 신원이 의심스러운 경우 소속회사나 신용정보협회*에 재직 여부 등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또한 채권추심자가 검찰·법원 등 사법당국을 사칭하거나 법무사, 법원집행관, 법원집행관대리 등의 사실과 다른 직함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예시) 채권추심자가 법률담당관, 법원집행관, 소송대리인 등으로 허위 기재한 명함을 사용하거나 이들 명의로 독촉장을 발송
추심채권이 추심제한요건에 해당할 경우
  • 본인의 채무가 추심제한요건*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하고 추심제한 대상인 경우 채권추심자에게 서면으로 추심중단을 요청(전화로 요청 시 통화내용 녹음)하시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시) 채무부존재 소송이 제기된 채권에 대해 채권추심
채권추심 제한대상이란?
  • 판결 등에 따라 권원이 인정되지 않은 민사채권
  • 채무자가 채권소멸시효 완성에 따라 추심중단을 요청한 경우
  •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경우
  • 채무자로부터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지원 신청사실을 통지받은 경우
  • 개인회생절차개시 또는 파산·회생에 따라 면책된 경우
  • 중증환자 등으로 사회적 생활부조를 요하는 경우
  • 채무자 사망 후 상속인이 상속포기하거나 한정승인한 경우

전체메뉴

안내

MS 인터넷 익스플로러(IE)
브라우저 지원 종료 안내

MS 인터넷 익스플로러(IE) 브라우저 서비스 지원이 2022년 06월 15일 종료됨에 따라 교보생명 홈페이지를 보다 안전하고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구글 크롬 브라우저 또는 MS 엣지 브라우저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 기존 IE 브라우저 사용은 보안에 매우 취약합니다.
    고객님의 안전한 홈페이지 이용을 위해 최신 웹브라우저를 권장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