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 <전원 교향곡>과 함께 듣는 베토벤 교향곡 <전원>: 눈먼 소녀에게 선사하는 세상의 아름다움

<비하인드 클래식>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지휘자 여자경입니다.
<비하인드 클래식> 이번 시즌에서는 문학 작품 속의 클래식 음악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해보려 합니다.
고전부터 현대 소설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서 클래식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지, 또 문자로 표현된 클래식을 소리로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오늘 그 첫 번째 시간,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 교향곡>과 함께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앙드레 지드’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좁은 문>으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 작가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도덕, 종교와 예술에 관한 깊은 탐구를 통해 20세기 문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작가로 평가받고 있죠. 앙드레 지드의 유년 시절은 종교적 엄격함과 개인적인 자유 사이의 갈등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생활했는데요. 앙드레 지드의 외가는 당시 프랑스에서는 드문 개신교 집안이었어요. 그것도 엄격하기로 유명한 칼뱅파 청교도였습니다. 칼뱅파 청교도는 적극적인 금욕을 통한 탈세속화를 중요시하였는데요. 늘 욕망을 자제하고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 도리였다고 합니다. 특히 허약한 체질 탓에 주로 집에서 머물러야 했던 그는 육체적 욕망과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 사이에서 번민하며, 신경쇠약에 시달렸을 정도였다는데요. 자서전에서 그는 “내가 받은 교육이 남긴 것은 자기혐오와 죄의식뿐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1893년 북아프리카 여행은 인생과 문학에 있어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성적 풍토를 경험한 그는 엄격한 그리스도교적 윤리에서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그의 삶과 작품은 끊임없이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고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죠. <좁은 문> <전원 교향곡>, 그러한 작가의 변화가 담긴 작품들인데요. 무릇 아름답고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종교적 신념이 가져오는 위선과 사랑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종교적 신념이 가져오는 위선과 비극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죠. 바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입니다.

베토벤은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전원 교향곡’은 그가 시골에서 요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때 느낀 자연의 정취를 악보에 담아낸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이 소설에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의 이상향을 나타냅니다. 스위스 산골 오두막에서 귀머거리 노파와 살던 눈먼 소녀는 언어도 기본 예절도 배운 적 없는 야생 짐승과 같았습니다. 노파마저 죽고 돌봐줄 사람 없이 혼자가 된 그녀를 마을의 목사가 집으로 데려와 정성껏 보살피는데요. 목사의 보살핌으로 제르트뤼드는 아름다운 숙녀로 성장하죠. 하루는 목사가 제르트뤼드를 연주회에 데려갑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제르트뤼드는 황홀감에 젖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목사님이 바라보시는 세계도 그것처럼 아름다운가요?”
“그것처럼이라니, 뭘 말하는 거니?”
“그 ‘시냇가의 정경’만큼 말이에요.”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제르트뤼드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 곡, ‘시냇가의 정경’은 <전원 교향곡> 2악장의 표제입니다.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귀로 듣는 세상의 다채로운 매력에 제르트뤼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감탄하죠. 이 소설에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제르트뤼드가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세계 그 자체입니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2악장을 포함해, 총 다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보통 교향곡이 4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5악장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지닌 것이 특징적이죠.

<전원 교향곡>의 또 다른 특징 ‘표제음악’입니다. 표제음악이란, 쉽게 말해 ‘제목이 있는 음악’을 뜻하는데요. 제목을 통해 곡의 분위기나 흐름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하지만 베토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 감정의 표현이며, 그에 곁들여서 몇 가지의 기분을 그린 것이다.” 듣는 이들이 ‘표제’에 지나치게 얽매여 곡의 이미지를 규정하게 될까 염려했던 것인데요. 그만큼 이 작품은 단순한 자연 풍경의 ‘묘사’가 아닌 자연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이 곡에만 표제를 붙였습니다. 베토벤이 악보에 직접 ‘전원 교향곡’, ‘시골 생활의 추억’이란 메모를 남겼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교향곡 6번은 베토벤의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는 각 악장에도 직접 표제를 붙였는데요.

1악장의 제목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감정’입니다. 자연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기쁨과 평온함을 그려낸 곡이죠. 짧은 동기를 반복해서 자연의 일정한 리듬과 시골에서의 안정된 삶을 전원적이고 따뜻한 조성인 F장조로 표현하였습니다.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입니다. 앞서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 교향곡>에서 눈먼 소녀 제르트뤼드를 매료시킨 바로 그 곡이죠. 시냇물의 흐름, 새들의 지저귐 등 자연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된 곡입니다. 후반부 새의 묘사 또한 특징적인데요. 플루트는 꾀꼬리, 오보에는 메추라기, 클라리넷은 뻐꾸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2악장에서 자연의 소리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내면적 평화를 음악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짧은 악장이 한 번에 쭉- 이어서 연주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요.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이라는 표제를 붙여서 마치 전원생활의 활기찬 순간들을 담듯 경쾌한 음악이 이어집니다. 특히 목관악기와 현악기들이 대화하는 듯한 표현으로 정겨운 시골 풍경을 그려내기도 하죠. 베토벤은 빠른 반복음들을 사용하여서 자연 속 인간공동체의 따뜻함과 생동감을 표현하였습니다.

4악장 ‘뇌우, 폭풍’의 시작인데요. 갑작스러운 중단과 긴장감 있는 화성 진행으로 폭풍 장면을 암시하죠. 즐거운 모임 중에 갑자기 다가온 폭풍의 전조처럼 음악이 예기치 않게 끊기며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4악장은 모든 악장 중에서 가장 묘사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무서움과 긴장함을 표현하였습니다. 곡의 길이는 짧지만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악장이죠.
5악장의 표제는 ‘목가, 폭풍 후의 기쁨과 감사’입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전원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자연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삶에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죠. 5악장에서는 클라리넷과 호른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울림을 통해 목가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베토벤은 1808년 12월 22일 자신의 세 번째 아카데미에서 이 작품을 직접 지휘로 선보였는데요. 이 공연은 지금까지도 기념비적인 이벤트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주요 작품 <전원 교향곡>과 <운명 교향곡>이 이 공연에서 동시에 함께 초연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공연은 무려 4시간 이상 진행되었죠. 이 공연은 무려 4시간 이상 진행되었죠. 두 곡의 성격은 매우 다르지만, 같은 음악적 사고와 같은 시기에 탄생한 이 작품들은 베토벤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르트뤼드에게 세상은 오직 선함과 아름다움만 존재합니다. 마치 그녀가 들은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처럼 말이죠. 목사 역시 소녀가 세상을 그저 <전원 교향곡>처럼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하며 살길 바라는데요. 그래서 소녀가 세상이 정말 베토벤의 음악처럼 아름답냐고 묻자 선뜻 대답하지 못하며 말을 돌립니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교향곡의 화음들이 현실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있을 수도 있었을, 만일 죄와 악이 없었더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을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에 즉답을 피했다.” 거기에는 소녀의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주름진 중년 남성인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은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소녀를 이성으로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요. 목사는 동정심과 사명감에서 시작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으로 변했다는 것을 조금씩 깨 닫지만 애써 부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소녀가 수술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죠. 결국 제르트뤼드는 눈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요.
시력을 회복한 그녀가 보게 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고 느꼈던 황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까요?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과 함께 앙드레 지드의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비하인드 클래식,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