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 곡,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

<비하인드 클래식5> 2편
여러분 안녕하세요. <비하인드 클래식> 의 지휘자 여자경입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한 번쯤 들어본 유명한 문장이죠.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입니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기까지, 자아를 찾기 위한 정신적 투쟁을 그린 소설 <데미안>. 오늘의 클래식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소설 <데미안>. 오늘의 클래식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에서 만나보겠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종교적 신념이 강했던 그의 부모님은 아들도 선교사가 되길 바랐는데요. 헤세 역시 가문의 전통을 이어 선교사가 되려는 생각으로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적 기질이 다분했던 헤르만 헤세는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했는데요. 무단이탈과 휴학을 반복하던 그는 부적응과 신경쇠약증 발병으로,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며 수도원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헤세는 이때의 경험을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 담아냈죠. 학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헤르만 헤세, 그가 쓴 시와 소설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헤르만 헤세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찾아가고 있었는데요.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습니다.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자 헤르만 헤세는 반전 행보를 보이며 조국인 독일을 비판하는데요. 독일 극우파들은 그를 매국노라고 매도하며 급기야는 출판까지도 금지당하게 됩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 아내와 아들의 투병 등 개인적인 삶에도 큰 위기를 겪으며 신경쇠약이 재발하고 마는데요. 헤르만 헤세는 칼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심리 치료를 받습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서 정신적인 위기를 극복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이때 나온 작품이 바로 <데미안>입니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겪는 정신적 체험의 섬세한 묘사는 아마도 이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인생에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마다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납니다. 인도자 ‘데미안’에 의해 끊임없이 각성하는 싱클레어, 청년이 된 싱클레어는 그의 인생에 있어 데미안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명의 인물을 만나죠. 그의 두 번째 인도자 ‘피스토리우스’입니다.
마음이 짓눌릴 때면 피스토리우스에게 전에 들었던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해 달라고 청했다. 그럴 때면 어두운 저녁 교회 안에서 나는, 자신 속으로 깊이 침잠해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이 기이하고 내밀한 음악에 몰입하여 앉아 있었다. 그 음악은 번번이 기분 좋았고 나로 하여금 더욱더 영혼의 목소리들을 인정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열여덟 살 청년 싱클레어는 우연한 기회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와 친구가 됩니다.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와의 철학적 대화를 통해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게 되죠.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들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곤 하는데요. 싱클레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는 어떤 곡일까요?

‘파사칼리아’는 17세기 초 스페인에서 발생한 느린 3박자의 춤곡입니다. 16세기 중엽에 유행한 파사칼레(pasacalle)라는 2박자 행진곡이 무곡이 된 것인데요. 스페인어로 파사(pasar)는 ‘걷다’ 칼레(calle)는 ‘거리’를 뜻합니다. 파사칼리아는 이후 프랑스의 궁정 발레곡으로 사용되다가 점점 무도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기악곡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단 하나의 저음 선율을 반복하면서 위에 다양한 변주를 덧붙이는데요. 샤콘느과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변주곡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북스테후데가 작곡한 <파사칼리아>는 오르간 연주곡인데요.
오르가니스트이자 교회음악 작곡가였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는 당대에 명성이 아주 자자했다고 합니다. 1703년 헨델이 열여덟 살 때, 북스테후데를 찾아와 가르침을 받았고, 1705년에는 스무 살의 바흐 역시 그의 연주를 들으려 400km가 넘는 길을 걸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바흐와 헨델도 <파사칼리아>를 작곡했죠. 이처럼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는 바흐와 헨델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케이팝 그룹 BTS도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BTS의 대표 히트곡 <피 땀 눈물>의 뮤직비디오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하면서, 소설 속 음악이었던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도 등장하는데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에게 오르간을 연주해 주던 피스토리우스처럼 BTS의 한 멤버가 오르간으로 북스테후데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합니다. 덕분에 <파사칼리아>는 전 세계 K-팝 팬들에게 낯익은 멜로디로 자리 잡게 되었죠.

사실 대중들에게 익숙한 건 북스테후데보다 바흐일 것 같습니다. <파사칼리아와 푸가 C단조 BWV 582>는 바흐의 작품 중 유일한 파사칼리아입니다. 바흐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로 오르간을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죠. 이 곡은 170곡이 넘는 바흐의 오르간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북스테후데를 비롯하여, 수많은 오르간 연주자들의 파사칼리아보다도 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흐의 작품은 여러 음악가에 의해 오케스트라, 피아노, 관악, 현악 등으로 편곡되었는데요. 오늘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바흐의 <파사칼리아>를 들어보실까요?

파사칼리아를 이야기하면서 이 곡을 뺄 수가 없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2번 D단조 5악장>. ‘샤콘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흐’의 샤콘느입니다. 제일 유명한 ‘샤콘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샤콘느는 파사칼리아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변주곡인데요. 둘 다 같은 화성 진행 하나를 두고 멜로디를 변주하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3개의 소나타와 3개의 파르티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흐의 ‘샤콘느’는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의 5악장>입니다. 전체 악장 중 제일 어렵고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곡인데요. 5악장 안에서도 30개의 변주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스테후데에 영향을 받아 파사칼리아를 작곡한 음악가가 또 한 명 있었죠. 바로 헨델입니다. 1720년경 헨델은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했는데요. 그중 <파사칼리아 G단조>가 백미로 꼽히죠. 파사칼리아 자체가 변주곡이다 보니 헨델의 곡 역시, 여러 악기로 구성된 수많은 변주가 쏟아져나왔습니다. 곡 역시, 여러 악기로 구성된 수많은 변주가 쏟아져나왔습니다. 19세기 노르웨이의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요한 할보르센은,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곡으로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편곡해 발표하였는데요. 비올라의 반복되는 베이스 연주 위로 변주되는 바이올린 소리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할보르센의 편곡이 원곡 못지않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헨델과 할보르센의 곡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기서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얻듯이 보물을 얻어 내려고 구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애쓰고 있다고.”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음악은 자신의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수단입니다.
“한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흔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아주 절대적인 음악을 통해 찾아내는 ‘보물’ 같은 ‘자아’. 음악을 통해 본인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싱클레어처럼, 오늘 하루 클래식과 함께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비하인드 클래식,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