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의 본능, 사이코패스의 초상. 토머스 해리스 - 『양들의 침묵』

[표창원의 크리미널 코드_2편 : 살육의 본능, 사이코패스의 초상]

살가죽이 벗겨진 채 강에 유기된 젊은 여성의 시신,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입니다. “오늘 낮에 웨스트버지니아주 엘크 강에서 오리 사냥꾼들이 시체를 발견했어. 버팔로 빌 사건과 비슷한 유형인가 봐.” 젊은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신체를 훼손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한 연쇄살인 일명 ‘버팔로 빌 사건’. 특이한 점은 피해자들에게서 성범죄의 흔적이나 신체적 학대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데요. “시신들은 모두 벌거벗은 상태로 발견됐다. 부검 전문의들은 ‘명확한 생식기 손상’의 증거는 없다고 기록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범죄 스릴러, 토머스 해리스의 장편소설 <양들의 침묵>입니다.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 FBI 연수생 클라리스 스탈링은 상부의 지시를 받고 볼 티모어 주립, 정신질환 범죄자 수감소로 향합니다. 그녀가 이곳에서 만나야 할 사람은 한니발 렉터 박사. 유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한니발 렉터는 자신의 환자를 아홉 명이나 살해하고 그들의 인육을 먹는 기괴한 행동으로 이곳에 갇혀있는 수감자였죠. 한니발 렉터가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교묘한 대화로 상대를 자극한다는 걸 알고 있는 그녀의 상관은 스탈링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렉터가 자네에게 말을 건다면 그건 그가 자네에 대해 알아내려고 한다는 뜻이야. 뱀이 새 둥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종류의 호기심이지. 자네에 관한 개인적인 사실들을 그가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하게 해야 해.”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희대의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빛에 클라리스 스탈링은 압도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렉터 박사의 고동색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붉게 빛났다. 가끔 조명의 각도에 따라 눈동자 안에 붉은 불꽃이 날아다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의 눈빛에 사로잡힌 스탈링은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팔뚝의 털이 곤두서면서 블라우스 소매에 닿았다.”

하지만 곧 기죽지 않는 대담한 모습으로 한니발 렉터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죠.

“렉터 박사가 자네한테는 입을 열고 있어, 스탈링. 하지만 자네가 그의 장난감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 잊지 마.”

이후 스탈링은 렉터 박사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며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데요. 그러던 어느 날, 일곱 번째 사건이 발생합니다. 납치된 여성은 상원의원의 딸 캐서린 마틴. 스탈링에게 또다시 렉터 박사를 만나보라는 명령이 떨어지죠.
“렉터가 재미로 나서려 한다는 걸 잊으면 안 돼. 그에게 이건 그냥 오락거리일 뿐이야. 그런 그를 구워삶아서 캐서린 마틴이 살아 있는 동안 버팔로 빌을 잡고 싶게 만들어야 해.”

한니발 렉터 박사는 ‘버팔로 빌’에 관한 단서를 주는 대신 클라리스 스탈링의 개인사에 관한 정보교환을 요구합니다. 스탈링은 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죠. 한니발 렉터 박사는 ‘버팔로 빌’의 범행 의도를 가늠할만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클라리스, 버팔로 빌이 캐서린 베이커 마틴을 어떻게 할 작정인지 말해주고 오늘은 이만 작별해야겠어.” “범인이 캐서린을 어쩔 작정인데요, 렉터 박사님?” “가슴이 달린 조끼로 만들 려고 해. 그래서 그는 진짜 여자들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고 있는 거야. 그동안 납치한 여자들을 보면 그가 ‘탈피’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한니발 렉터 박사의 도움으로 버팔로 빌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탈링! 그녀는 과연 캐서린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한니발 렉터 박사는 저명한 정신의학 박사인 동시에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기도 하죠. 그는 작은 몸짓이나 짧은 대화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통찰력은 물론, 예술에 조예가 깊고 지적이며 매너를 중시하는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이면에는 폭력적이고 광기가 어린 모습이 숨어있습니다. 렉터 박사는 주로 자신에게 심리 치료를 받던 환자들을 살해했는데요. 스탈링이 그에게 한 환자를 죽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하죠. “솔직히 말하면 그가 징징대며 털어놓는 얘기를 듣는 게 신물이 났어.” 특정한 이유나 목적도 없이 인간을 살해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 우리는 그에게서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행태를 보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죠. 그리고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서 쾌감과 희열을 느낍니다. 사이코패스들은 충동성이 강하고 반사회성이 강해서 윤리, 도덕, 법 혹은 규범 등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것도 특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의 사례를 좀 살펴보면요. 강호순의 경우에는 기존의 연쇄살인범들과 달리 호감형 얼굴과 유창한 말솜씨를 가진 특징이 있죠. 연쇄살인범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이나 사회적 소외로 인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특이할만한 점인데요. 그는 결혼을 4번이나 하고도 계속 다른 이성을 만나는 행태를 지속해 왔고요. 고급 승용차를 이용해서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방식으로 8명을 강간, 살해했고 아내와 장모를 포함해 총 10명을 연쇄 살해한 사이코패스 흉악 살인범입니다. 그는 인간을 소유와 지배, 통제 대상으로 보는 사이코패스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죠.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그동안의 면식범 수사, 우범자 중심 수사처럼 살인사건의 전통적 수사기법의 공식을 깨트린 범죄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의 개념을 우리나라 대중에게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죠. 그는 연쇄살인 이전에도 절도, 강간, 폭력 등 수많은 범죄 경력이 있었던 전과 14범이었는데요. 부유층 노인과 여성 등 20명을 살해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좋았다.”라고 발언하면서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려는 모습으로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보여준 그는 사이코패스 판정 검사에서 40점 만점에 38점을 받기도 했죠.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인간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살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연쇄살인 범죄자였습니다.

‘버팔로 빌 사건’의 범인은 한니발 렉터가 저지른 연쇄살인과는 달리, 명확한 목적과 계획을 지닌 범행으로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성범죄와 연관된 연쇄살인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 또 피해자를 납치한 후 사흘에서 열흘 정도 붙잡아뒀다는 점 등으로 FBI는 그를 가학성애자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범인은 여성을 납치 살해한 후에 신체 일부에서 가죽을 벗겨내고 시신을 유기하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입니다.

범죄자들이 시체를 훼손하는 심리에는요. 피해자의 신원을 감추려는 목적이 있는 경우가 있고요. 또 시신의 처리를 쉽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하기도 하죠. 버팔로 빌처럼 개인적 욕구를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1957년에 검거된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은 버팔로 빌의 실제 모델입니다. 그는 미국 위스콘 신주의 한 시골 마을에 살았던 인물인데요. 수많은 여성을 납치해서 살해한 후에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피부 가죽을 벗겨서 옷과 벨트, 의자 커버 등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엽기적인 범행으로 사람들을 경악시켰죠. 어린 시절 지나치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형성된, 여성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변태적 성욕으로 표출되었던 것입니다.

버팔로 빌이 모델로 삼은 실존 인물이 또 있습니다. 1970년대, 무려 서른여섯 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서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입니다. 소설에서 버팔로 빌이 캐서린 마틴을 납치할 때, 팔에 깁스를 하고 트럭에 짐을 싣는 척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테드 번디가 이처럼 범행 대상에게 길을 물어보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접근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테드 번디는 한니발 렉터의 소재로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1984년에 워싱턴주 시애틀 일대에서 발생한 ‘그린리버 연쇄살인 사건’ 범인의 유형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FBI의 조사과정에 도움을 준 것입니다. 평소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했던 테드 번디는 FBI가 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서 적극적으로 자문에 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일화가 한니발 렉터의 이야기로 쓰인 것이죠.

소설 <양들의 침묵>에서 FBI 수사관 클라리스 스탈링은 연쇄살인 사건 파일을 보며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해도 마땅한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연쇄살인 범죄, 우리 사회의 작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막을 수 있습니다.

표창원의 크리미널 코드,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