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우수고객 안내
고객님을 위한 우수 고객 전용 서비스는
MY교보 > 혜택 > 교보 노블리에 서비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객님을 위한 우수 고객 전용 서비스는
MY교보 > 혜택 > 교보 노블리에 서비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키보드 Crtl버튼과 마우스휠 "상하"로 움직이면
"확대" "축소"가 가능합니다.
젊은 문인 서넛이 모인 사랑방에서는 설 세배상이 금세 술상이 되고 윷 노름판이 벌어질 참이었다. 그때 소문난 주당이자 깐죽거리기로 일급인 시인이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괜한 트집을 부렸다. 시인 왈, 음악이나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주제넘게 소설이 다 무슨 짓이냐, 동서고금 통틀어 두 가지 예술에 한꺼번에 대성한 천재가 있더냐 하는 소리였다. 요컨대 한 우물이나 제대로 파라는 말씀이렷다. 술김에 시비를 건 쪽은 공연히 핏대를 올렸고, 얼결에 한 방 얻어맞고 휘청한 쪽도 사내자식 체면인지라 고분고분 물러서긴 싫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술친구였던 두 사람 모두 스물예닐곱의 청춘이었으므로…
그날 밤 씩씩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 음악가 겸 소설가는 새벽녘 일찌거니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와 막 출판사에 넘기려던 창작집 원고 한 뭉치를 아궁이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마지막 한 장이 재가 될 때까지 아궁이를 노려보았다. 그날부터 음악가 겸 소설가는 그냥 음악가만 되기로 마음먹었고, 금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소설가를 때려치운 음악가는 은근하게라도 시인을 고맙게 여겼을까?
자기도 모르는 결에 문학청년 하나를 구원의 길로 이끈 시인은 이태 전에 「논개」를 발표한 수주 변영로다. 그리고 변영로와 마주칠 때마다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소설가는 난파 홍영후, 바로 「봉선화」의 작곡가인 홍난파다. 술고래의 말마따나 문청은 그길로 문학을 작파했 으니 홍난파가 소설가였던 시절은 1919년부터 1924년까지 꼬박 다섯 해로 막을 내렸다.
삼일 운동 전야인 1919년 2월에 문학, 음악, 미술 세 가지를 아우르겠노라며 홍난파가 야심만만하게 이름 붙여 펴낸 동인지가 《삼광》이다. 《삼광》은 최초의 근대문학 동인지로 쳐주는 김동인의 《창조》보다 고작 아흐레 뒤져 창간되었다.
둘 다 도쿄의 하숙방을 본거지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창조》는 문학 동인지요《삼광》은 예술 동인지이니 아무래도 《삼광》이 한 수 위다. 《삼광》의 면면을 볼작시면 미술은 언감생심이었으나 음악이야 홍난파가 도맡으면 될 터였다. 문학은 시인 황석우, 소설가 염상섭, 극작가 유지영, 번역가 홍난파가 한데 모였으니 시, 소설, 희곡, 수필, 비평, 번역까지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바로 그 《삼광》 창간호에 홍난파가 번역해 내놓은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가난한 사람들」이다. 비록 《삼광》은 3호로 그쳤지만 홍난파의 번역은 1923년 6월에 단행본으로 출판되 었다. 어쨌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등단작「가난한 사람들」이 곧 홍난파의 등단작 이기도 한 셈이다. 그뿐인가? 홍난파의 번역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자 식민지 시기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이기도 하다.
홍난파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뛰어든 것은 1921년 무렵의 일이다. 사실 그전에도 홍난파는 내로라하는 음악가이자 일본 유학생계에서 배출된 최고의 스타 저술가였다. 열여덟 살 때인 1916년부터 문학을 배신한 1924년까지만 해도 홍난파는 무려 열다섯 권의 창가집과 음악 논저를 출판했으니 말이다. 그사이에 ‘재동경 조선 유학생 악우회’를 꾸려 《삼광》을 창간하면서 홍난파는 문학청년의 꿈에 조금씩 다가갔다. 그리고 1921년부터 분서 사건이 일어난 1924년 사이에 놀랍게도 스무 권의 책을 더 펴냈다.
홍난파는 그중 몇 권의 앞머리나 광고란에 자신의 저술 목록을 잔뜩 늘어놓았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서른 권이 넘는 저술 목록을 가진 작가가 있었던가? 자기 책에다가 이처럼 당당하고 멋지게 자기 저술 목록을 광고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었던가? 게다가 음악, 창작, 번역을 보기 좋게 분류해서 차려 놓을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있었던가?
먼저 소설가로서 홍난파. 홍난파는 신문 연재소설 작가이기도 해서 나중에 단행본으로 펴낸 소설이 두 권이다. 홍난파는 창작이라고 우겼지만 실제로는 일본소설을 한국식으로 번안했다. 세련된 고급 장정의 창작집「향일초」는 근대문학의 역사상 두 번째로 상재된 단편소설집이니 홍난파는 이번에도 꼭 한 발 늦었다. 막상「향일초」의 실상이 라는 것이 문학청년의 습작 수준에 머물렀다거나 별 볼 일 없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장편, 단편의 홍난파 소설이 모두 여덟 권이나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 실제로 출판된 것은 신문 연재소설을 손봐서 펴낸 두 권과「향일초」뿐이다. 나머지 다섯 권은 기실 출판되지 않았거나 또는 출판되지 못했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홍난파는 문학청년의 길을 버리고 결연히 음악가의 길로 매진하겠노라 다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출판사에 막 넘기려던 원고까지 불태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 뭉치는 분명히 이튿날 새벽에 불태웠지만 나머지 네 뭉치를 몽땅 태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네 뭉치 가운데 적어도 두 뭉치는 지금도 고이 남아 있으니 문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홍난파는 자기 소설을 직접 각색해서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무대는 홍난파의 바이올린과 윤심덕의 독창으로 열렸고, 연극은 김우진이 연출했다. 훗날 김우진과 윤심덕은 현해탄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던지고 말았으니 홍난파에게도 예술이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번에는 번역가로서 홍난파. 홍난파의 번역 목록은 한결 화려하다. 모두 열두 권이나 되는 번역서를 볼라치면 도스토예프스키 말고도 투르게네프, 시엔키에비치, 빅토르 위고, 뮈세, 주더만, 에밀 졸라……. 19세기 중후반 꼭 육십 년의 유럽 문학에 집중된 번역서 목록은 가히 당대 최고의 세계문학 컬렉션이라 할 만하다. 작가 수준도 그러하거니와 작품을 고른 안목도 손색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실제로 출판되지 못했지만 번역 단편집 한 권과 희곡집 한 권도 마무리 단계까지 육박한 참이었다. 그중 한 권의 원고 역시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 홍난파를 가리켜 식민지 시기 최고의 세계문학 번역가라 일컬어도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다.
불과 다섯 해 만에 쌓아 올린 목록이 이러할진대 변영로가 비아냥거리지만 않았어도, 홍난파의 객기만 아니었어도 바그너 뺨치는 음악가 겸 소설가가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계문학이라는 것의 파노라마를 보여 준 홍난파는 적어도 삼일 운동 직후에 출현한 최초이자 최고의 전문 번역가임이 틀림없다. 홍난파에 맞먹을 만한 번역가는 그전에도 존재한 적이 없고 그 뒤로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홍난파가 도쿄의 하숙방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번역하는 모습이야말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가가 탄생하는 진풍경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홍난파가 곧바로 절필이라도 한 것은 아니다. 홍난파는 음악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다시 음악 전문 잡지를 발행했고 줄곧 글을 썼으며 또한 책을 펴냈다. 최초의 음악 산문집 「음악 만필」을 선보인 것도 홍난파다. 분서는 분서였지만 절필은 결코 아니었던 셈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홍난파의 분서를 곧이곧대로 변영로의 술주정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음악에 대한 홍난파의 열정으로만 바라보기에도 미심쩍다. 어쨌거나 홍난파는 원고 전부를 불태운 것이 아닐뿐더러 나머지 몇 뭉치의 원고를 두고두고 소중히 간직했다가 우리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난파는 대체 왜 번역가로 먹고사는 일을 그만두었을까? 홍난파는 어째서 세계문학을 꿈꾸는 번역가의 길을 저버렸을까? 우리는 식민지 한국에서 갓 탄생한 전문 번역가의 때 이른 좌절, 나아가 번역이라는 것의 비극적인 운명을 묻고 있는 셈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0조 및 「금융투자업이해상충방지규정」
제15조 등에 의거하여 아래와 같이 교보생명의 정보교류 차단과 관련된 주요 내용을 공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분 | 기초수급자 지원 | 영세자영업자 등 지원 | 개인워크아웃 (개인신용회복) |
개인회생제도 |
---|---|---|---|---|
신청기관 | 자산관리공시 | 신용회복위원회 | 신용회복위원회 | 법원 |
시행시기 | 2005년 5월 9일부터 6개월간 한시적 |
2005년 5월부터 시행 | 2002년 10월 1일부터 | 2004년 9월 23일부터 |
대상채권 |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
1개 금융기관 단독채무자 및 다중채무자 모두 대상 |
협약에 가입한 2개 이상 금융기관 채권 |
제한 없음(사채 포함) |
채무범위 | 제한 없음 | 제한 없음 | 5억원 이하 | 무담보채무(5억) 담보채무(10억) |
대상채무자 | 기초수급자이면서 신용불량자 (2005.03.23 기준) |
|
신용불량자이며 최저생계비 이상 소득자 |
파산지경에 이른 봉급생활자 또는 영업소득자 |
채무조정수준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채무자의 총채무액을 채무조정을 통해 장기분할상환 |
8년 이내 변제기간에 채무자가 정한 변제계획에 의한 변제 |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함
다음 사유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신용회복지원신청을 할 수 없음
지부명 | 전화번호 |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
---|---|---|
서울 명동본관 | 02-6337-2000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1가 10-1 명동센트럴빌딩 6층 (한국 외환은행본점 뒤편) |
서울 영등포지부 | 02-6337-2000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18 영등포프라자 10층 (영등포 마사회빌딩 10층) |
부산지부 | 051-638-8890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825-3 (눌원빌딩 6층) |
대구지부 | 053-428-9360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 1가 6-1번지 (대우빌딩 4층(대구역 앞)) |
광주지부 | 062-233-1872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27 (금호종합금융(주) 6층) |
대전지부 | 042-538-0320 |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188-15 (사학연금회관 5층) |
인천지부 | 032-864-9460 | 인천광역시 남구 주안동 205-11 (주안역에서 (구)시민회관 방향 400미터 전방) |
경기도지부 | 031-234-6108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1246 (경기지방공사 내 1층) |
의정부상담소 | 031-844-9848 |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195-6 (의정부역앞 동부광장 건너편 한국시티(한미)은행 4층) |
원주상담소 | 033-764-1439 | 강원도 원주시 원동 58-1,마노벨라 빌딩 3층 (원주우체국에서 원주KBS방향 100m 지점) |
천안상담소 | 041-522-1459 | 충남 천안시 신부동 472-2, 천안축협 신부동지점 2층 (천안 시민회관 건너편) |
청주상담소 | 043-224-9521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 21-2 (하나로상호저축은행 남문로지점 2층) |
전주상담소 | 063-253-5941 |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20-1 (전주종합경기장 1층 직5문) |
울산상담소 | 052-260-9413 |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 873-6 (삼호빌딩 3층) |
마산상담소 | 055-292-5495 | 경상남도 마산시 석전2동 259-6 (석전4거리 경남은행본점 옆 무학빌딩 3층) |
순천상담소 | 061-742-9415 | 전라남도 순천시 저전동 206-2 (남교 5거리에서 순천여고 방향 30미터 지점) |
제주상담소 | 064-758-9413 | 제주시 이도1동 1736-1 (흥국생명빌딩 3층) |
강릉상담소 | 033-641-2765 |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95-3 (옥천오거리 인근 옥천빌딩 3층) |
광명상담소 | 02-2066-8539 | 경기도 광명시 철산 3동 384 (농협중앙회 광명시지부 지하1층) |
안동출장상담 | 054-851-6046 | 경북 안동시 명륜동 344 (안동시청 민원실) |
2004년 12월 31일 현재 신용불량자로서 다음의 요건을 충족하는 영세자영업자
2004년 12월 31일 기준 만 29세 이하의 미취업자로서 다음의 기준에 해당하는 채무자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2004년 12월 31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신용회복위원회 : 2005년 4월 1일부터 6개월간
2005년 3월 23일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지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전국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정보가 등록된 자로써,
지부명 | 전화번호 | 지부정보 (주소/위치 안내) |
---|---|---|
역삼본관 | 02-1588-3570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14 |
부산지사 | 051-860-8000 | 부산광역시 연구 거제3동 581-1 |
광주지사 | 062-231-3000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5가 183 |
대전지사 | 042-601-5163 | 대전광역시 둔산동 1264 |
대구지사 | 053-760-5000 |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179 |
인천지사 | 032-509-1500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동 202-1 |
전주지사 | 063-230-1700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1가 1280-11 |
창원지사 | 055-269-8071 | 경상남도 창원시 중앙동 94-3 |
강릉지사 | 033-640-3434 |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139 |
청주지사 | 043-279-2400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235-14 |
각종 신용회복지원제도를 통해서 신용회복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의 개인채무자회생 제도 또는 파산제도를 이용하세요.
개인채무자회생제도는 2004년 9월 중에 실시할 예정이며, 파산제도는 이미 시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신청이 가능합니다.
MS 인터넷 익스플로러(IE) 브라우저 서비스 지원이 2022년 06월 15일 종료됨에 따라 교보생명 홈페이지를 보다 안전하고 원활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구글 크롬 브라우저 또는 MS 엣지 브라우저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